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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산책]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美 노예제 반성을 통한 인종적 화해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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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9-30 14:22 조회 7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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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산책]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美 노예제 반성을 통한 인종적 화해 모색

  • 한재환 교수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 |
  • 입력 2022-09-30 발행일 2022-09-30 제21면
  • 수정 2022-09-30 07:00
노예제 끝났어도 그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토니 모리슨(1931~2019)은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대표적 현대작가이다. 오하이오주에서 출생한 모리슨은 고등학교까지는 로레인이라는 도시에서 다니다 대학은 흑인의 하버드로 알려진 하워드대학에 진학하였다. 코넬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그녀의 석사학위 논문은 윌리엄 포크너와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에 대한 연구이다. 모리슨은 랜덤하우스 출판사에도 근무하고 또 오랫동안 프린스턴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로도 근무했다. 1987년도에 출판된 '빌러비드'는 '뉴욕 타임스'에서 소설가와 비평가를 대상으로 지난 25년간 출판된 소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소설을 꼽으라는 설문에서 1위에 오른 작품으로 문학성, 사회성, 시의성을 갖춘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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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러비드'의 시대적 배경은 1855년에서 1873년으로 이때는 남북전쟁(1861∼1865) 전후이며 특히 재건시대로 알려진 시기다. 오하이오에 사는 흑인 노예가 자신의 딸이 노예로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아 살해한 이야기인 마가렛 가너라는 여인에 관한 신문기사를 바탕으로 쓴 '빌러비드'는 마가렛 가너 이야기에 상상력을 발휘해 새롭게 쓴 작품으로 노예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다루고 있다.'빌러비드'는 미국 노예제 동안 생긴 상흔이 노예제가 끝난 후에도 지속돼 그 희생자뿐만 아니라 그 선조들의 고통을 다시 소환하는 복잡하고 스펙트럼이 넓은 시대적 배경을 보여준다. 즉 작품은 노예제가 끝난 후 피해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다시 노예제 시기의 재기억을 보여주고 또 노예제 이전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들의 이야기까지 제시되면서 미국 노예제뿐만 아니라 유럽의 노예무역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묘사한다.

3부 28장으로 구성된 '빌러비드' 의 시간적·공간적 배경은 1873년 오하이오강 건너 신시내티다. 1부의 시작 문장은 "124번지는 원한이 가득했다"이다. 124번지 블루스톤 로드에서 딸 덴버와 사는 세스에게 갑자기 18년 전 켄터키주 농장 동료 폴 디가 찾아온다. 18년 만에 갑자기 찾아온 폴 디를 만나 반가운 것도 잠시 귀신들린 집은 폴 디를 괴롭힌다. 폴 디가 강하게 저항하며 귀신을 쫓아내자 집은 조용해진다. 곧 124번지에는 또 다른 손님이 찾아오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빌러비드가 사람으로 육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빌러비드는 정상적인 여성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마치 물속에서 살아나온 여자인 것처럼 숨이 가쁘며 기력이 빠져 있다. 20세 정도로 보이지만 말하는 방식과 행동은 어린애 같은 빌러비드는 세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한다. 세스는 이런 질문들이 신선했지만 점차 빌러비드가 마을공터에서 세스의 목을 조르는 등 괴롭히자 세스도 견디기 힘들어한다.


인간이하의 삶 살던 세스…노예의 숙명 물려주기 싫어 갓난 딸 죽이게 돼
18년 뒤 나타난 딸의 망령 '빌러비드' 통해 다시금 삶이 무너지는 경험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한 '빌러비드' 많은 흑인노예 대변하듯 이야기 전개
다시는 반복돼선 안될 역사…비극적 가족사와 그 극복의 서사로 표현



한편 이야기는 세스와 폴 디와의 대화를 통해 참혹했던 켄터키주 농장 생활이 드러난다. 폴 디와의 대화에서 행방불명되었던 남편 핼리의 당시 상황을 알게 되었고, 폴 디가 수탉보다 못한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는 동안 세스와 폴 디는 서로 동병상련을 느낀다. 사실 폴 디는 세스만큼이나 고통을 겪었는데 학교 선생이라 명명된 노예주에게 팔린 후, 새 주인을 죽이려 한 죄로 조지아 알프레드 수용소에 감금되어 인간 이하의 고통을 받다가 다른 죄수들과 탈출하여 북쪽으로 갔다. 글을 읽지 못하는 폴 디는 동료 스탬 페이드가 보여준 신문기사를 본 후 세스에게 아이를 죽인 것이 사실인지 확인한다. 세스는 한참 고민하다가 그때 있었던 일에 대해서 할 일을 했다는 듯이 말하자 폴 디는 동정이나 위로가 아닌 치명적인 말을 남기고 세스를 떠나는데, 그 말은 "세스, 너의 사랑은 너무 짙어 … 너는 발이 두 개이지 네 개가 아니야"였다.

모리슨의 재기억 전략은 2부에서 잘 나타나는데 그것은 20장부터 23장까지 각각 세스, 덴버, 빌러비드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하는 모놀로그이다. 그런데 23장에서는 세 모녀가 한목소리가 되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특이한 것은 빌러비드의 독백은 정상적인 문장이 아니라 마침표 혹은 따옴표가 없을 뿐만 아니라 문장이 엉성해 마치 어린애가 만든 문장처럼 보인다. 이것은 빌러비드가 두 살 때 죽어서 유아의 독백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빌러비드는 이미 단순한 죽은 두 살의 딸을 넘어서 아프리카에서, 노예선에서 죽어간 모든 흑인을 대변하는 존재가 된다.

3부의 시작은 "124번지는 조용했다"이다. 빌러비드는 지속적으로 많은 것을 요구하고 세스는 그것을 들어주려 한다. 남은 38달러의 전 재산을 다 쓰면서까지 빌러비드가 좋아하는 물품을 사서 딸의 요구를 들어주던 세스는 점점 몸이 쇠약해지고 작아진다. 반면 세스의 기를 뺏은 빌러비드는 몸이 비대해지고 배까지 불쑥해진다. 집이 혼란에 빠진 것을 목격한 덴버는 드디어 여러 해 만에 집 밖을 나가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최초로 찾아간 사람은 주일학교 선생님인 레이디 존스이다.

레이디 존스의 주선으로 마을 여인들로부터 음식을 받은 덴버는 무척 고마워하며 나중에 보드윈씨 집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도 한다. 보드윈씨는 평생을 흑인을 위해 살아온 사람으로 부친의 선한 영향으로 백인들이 행한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했다.

한편 마을 여인들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세스를 돕기 위해 모인다. 124번지 앞에서 기도를 하는 여인들 앞에 나타난 세스와 빌러비드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빌러비드는 커진 덩치와 함께 마치 임신한 것처럼 배가 불러 있었기 때문이다. 세스는 덴버를 태우러 온 보드윈씨의 모자를 본 후 얼음을 깨던 송곳을 들고 보드윈씨에게 달려드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저지한다. 멀리서 하얀 모자를 쓰며 다가오는 보드윈씨를 학교 선생이라고 여긴 세스가 이번에는 딸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한 것이다. 엄마의 이런 행동을 본 빌러비드는 만족한듯 사라지고 124번지에는 평화가 찾아온다. 또한 세스를 떠났던 폴 디도 다시 124번지에 오게 된다. 폴 디는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던 세스를 어루만져주며 그녀에게 "당신하고 나, 우리한테는 누구보다 어제가 많아. 이제 어떤 식으로든 내일이 필요해"라고 말하며 다정하게 다가간다.

작품의 마지막 장은 기억과 망각의 문제를 다루며 작가는 독자에게 "이 이야기는 잊어서는 안 된다"는 재기억의 문제를 환기한다. 즉, 이 이야기는 너무 비참해서 더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다르게 보면 이런 참혹한 역사는 다시는 반복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재기억의 사례는 집이 불타 사라져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재기억이다. 재기억은 점차 의미를 확장하게 되는데, 즉 나쁜 기억들이 불현듯 떠올라서 당사자들을 괴롭히는 트라우마적 재기억 그리고 흩어진 몰랐던 기억들이 다시 합쳐지고 정리되는 통합적 재기억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재기억은 소설의 마지막 장에 제시되듯이 기억과 망각에 관한 재기억으로 옳지 못한 역사적 과오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며 후손들에게 끊임없이 전승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리슨은 이 소설을 "6천만명 그리고 그 이상"에게 바친다고 했다. 6천만명은 단순하게 노예제로 죽은 흑인이 아니다. 그 숫자는 노예선에 실리기 전에 아프리카 땅에서 포획되면서 저항하다 죽은 아프리카인에서부터 배 위에서 저항하다 죽은 흑인, 배 안에서 굶어서 죽거나 뛰어내린 흑인 그리고 미국 땅에 도착하여 노예로 살다가 여러 형태의 가혹 행위에 의해 죽은 모든 흑인을 포괄한다. '빌러비드'는 한 번 읽어서 이해될 수 있는 소설이 아니다. 독자는 이 소설을 여러 번 읽어서 모리슨이 던진 복합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모리슨은 잘못된 제도로 인한 인간의 고통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요구한다.

한재환 교수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공동기획 : KNU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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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환 교수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한재환 교수는 경북대 영어영문학과에서 '20세기 영국소설' '20세기 미국소설', 대학원에서 '20세기 영미소설'을 가르치고 있다. 미국 소수인종문학에 관심이 많으며, 특히 흑인문학과 흑인문화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경북대 인문대학 부학장과 영어영문학과 학과장을 지냈다. 또 한국현대영미소설학회 편집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영어영문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토니 모리슨의 삶과 문학' '세계문학 속의 여성'(공저) 등이 있고, 주요논문으로는 '콜슨 화이트헤드의 지하철도에 나타난 폭력의 양상과 자유를 향한 여정' '모리슨의 고향: 인종주의, 트라우마, 공동체'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