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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인문학 다문화 인문학 강의개요 (다문화의 중국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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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3-22 15:33 조회 36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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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의 중국 이해>

 

중화인민공화국의 헌법 서언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은 전국 각 민족 인민이 공동으로 세워낸 단일한 다민족 국가이다. 평등·단결·상부상조의 사회주의 민족 관계는 이미 확립하였고, 지속적으로 강화할 것이다. 민족 단결을 지키는 투쟁 과정에서 大民族主義, 주로 大漢族主義는 반대하고, 지방민족주의 또한 반대한다. 국가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전국 각 민족의 공동 번영을 촉진한다.”고 되어 있다. 중국이 통일 다민족 국가임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중국의 민족 구성은 한족이 약 92%를 차지하고 나머지 약 8%가 소수민족이다. 소수민족에 대해서 중국은 이른바 민족구역자치제도를 실시하는 등 다양한 소수민족 우대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위구르와 티베트 등 일부 소수민족은 중국에서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강하게 보이고 있고 중국이 가장 경계하는 심각한 민족문제로 남아있다. 중국은 이러한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 요구를 통일 다민족 국가라는 중국의 국가 성격에 대한 가장 심각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중국의 민족문제는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현재 중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민족자치구를 가지고 있는 민족 중 위구르족, 몽골족, 티베트족 자치구의 원형은 만주족 청나라에서 찾을 수 있다. 청나라는 여진족의 후금에 뿌리를 두고 있다. 누르하치의 후금 건국은 동일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여진족의 통일이라고 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부족의 통합이었다. 그리고 1636년에 홍타이지는 만주와 몽골의 왕공, 그리고 한인 무장에게 추대되어 세 민족을 아우르는 제국의 황제에 즉위하였다.

··한으로 구성된 통일 다민족 국가인 청나라가 탄생한 것이다. 이어 청나라가 북경을 점령하고 중국을 지배하는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1683년 대만을 정복함으로써 과거 명나라의 지배 영역에 대한 정복을 마무리했다. 그 직후 곧바로 청나라는 서북쪽의 몽골 세력인 준가르와 티베트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1759년 건륭제가 신장[新疆]’을 설치함으로써 청나라는 몽골고원, 티베트, 동투르키스탄을 포함하는 최대 판도를 형성하였다. 이 시기에 이르러 청나라는 직접 통치하에 있던 만(동북부의 만··)과 한(중국 내지)과 간접 통치하에 있던 번(몽골·티베트·위구르)로 대별되는 만··번의 지배 구조를 형성하였다.

만주족, 한족, 몽골족, 티베트족, 위구르족의 오족으로 구성된 중국은 이렇게 강희제 시기부터 건륭제 시기에 걸친 청나라의 서북 진출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쑨원은 191211일 중화민국 임시대총통에 취임하면서 선언한 한, , , , 장의 오족공화론은 청나라의 만··번의 지배 구조에 뿌리를 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오족공화론은 소수민족이 평등하게 공화체제의 주체로서의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족 중심의 민족동화를 주장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몽골족, 티베트족, 위구르족의 이탈 움직임이 순수한 민족주의적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 러시아와 영국, 미국 등 열강의 개입이 있다는 점에서 중국에 대한 열강의 분열정책(과분)의 결과라는 인식이 배경에 깔려 있었다.

이렇게 보면, 20세기 초기 중국의 민족주의는 한족 중심의 전통적 중화주의라는 팽창적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저항적 민족주의가 동전의 양면을 구성하고 있는 모순된 내부구조를 띄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공산당도 1934년에 제정한 중화소비에트공화국 헌법에서는 중국 국내의 소수민족에게 민족자결권을 승인하고 각 약소 민족의 분리, 독립의 권리를 명시하였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에는 그것을 전면 부정하였다. 이것은 20세기 초기 중국이 직면했던 민족주의의 모순이 현재까지도 그 기본적 맥락을 그대로 유지하고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